아이들은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의 침묵 속에서 읽어야 할 신호와, 마음에 닿는 진짜 소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때가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아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아이,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참 답답합니다.
“왜 그런 거야?”
“왜 말을 안 해?”
“말해봐야 알지.”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먼저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설명을 시작합니다.
1. 침묵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은 침묵을 종종 ‘무관심’이나 ‘반항’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들의 침묵은 생각이 많을 때, 감정이 복잡할 때,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어떤 아이는 무섭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어떤 아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하지 않으며, 어떤 아이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경험해서 침묵합니다.
우리는 그저 “왜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묻기 전에, 그 아이가 말을 꺼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2. “왜 그랬어?”라는 질문이 아이를 닫게 한다
어른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 “왜 그랬어?”는 사실 설명을 요구하는 문장이자, 동시에 판단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그 물음에는 암묵적으로 “넌 잘못했어. 그 이유를 말해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죠.
이 질문 앞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존재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입을 다물거나, 핑계를 대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정말 아이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땐 어떤 마음이었어?”
“네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꼈어?”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어때?”
그 질문들은 이해하려는 태도를 전제로 합니다. 그 순간 아이는 방어를 멈추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엽니다.
3.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웃고 말도 많던 아이였는데, 며칠째 말이 없어지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해?”
“요즘 이상하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조용히 앉아 같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생겼고 그림을 그리던 중 아이가 조용히 한 마디 했습니다.
“요즘 집에 자주 혼자 있어요.”
그 말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이해받고 있다고 느낀 순간에 조용히 꺼낸 마음이었습니다.
말을 끌어내려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었을 때 아이 스스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4. 말은 감정의 그릇이다
아이들은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먼저 정리되어야, 비로소 말로 표현이 됩니다.
즉, 설명이 먼저가 아니라 이해와 감정 정리가 먼저인 거죠.
그래서 때로는 말을 꺼내게 하기 위해 이성적인 질문보다, 따뜻한 공감이 더 필요합니다.
“지금 기분이 좀 힘들구나.”
“그럴 수도 있지. 나라도 놀랐을 것 같아.”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겠다.”
이런 문장들이 아이의 감정을 담아주고, 그 감정이 안정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5. 설명보다 관계가 먼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관계가 없으면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아이에게 ‘이 사람은 내 편이야’라는 신뢰가 있어야, 비로소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수를 한 아이에게 “괜찮아. 나중에 천천히 말해도 돼”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이 사람은 나를 탓하려는 게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스스로 정리된 마음으로 말하기 시작하죠.
아이의 언어는 관계 위에 쌓이는 건축물과 같습니다. 기초가 없으면 아무리 말을 요구해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6. 어른도 똑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른들도 설명을 하기 전에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힘들었던 하루를 말하고 싶을 때, 조언보다 공감이 먼저였던 순간들이 있었죠.
“그건 네가 잘못한 거지”라는 말보다는 “그랬구나, 마음이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었던 기억들.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다만, 어른보다 표현이 서툴고, 마음을 숨기는 기술이 부족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설명을 기다리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로 다가가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지 않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
아이는 설명하지 않을 때조차 우리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작은 표정, 몸짓, 눈빛, 말의 간격.
그 신호를 읽으려는 마음, 그 신호를 존중하는 시간, 그것이 아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아이는 이해받기 전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번 이해받았던 아이는 다음엔 조금 더 용기 내어 말을 꺼낼 수 있게 됩니다.
말하지 않아도,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어른, 그런 사람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든든한 대화 상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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